대중음악의 패러다임을 바꾼 밴드 비틀즈

2020. 1. 6. 10:32카테고리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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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리티시 인베이전 당시 미국에서 가장 많은 인기를 구가하던 I Want To Hold Your Hand

 

"비틀즈의 사운드는 바흐의 푸가에 필적한다. 여러 가지 의미로 비틀즈는 금세기 최고의 작곡가다. 그들은 20세기의

슈베르트나 헨델이라고 할 수 있다. 베토벤이 20세기에 태어났다면 비틀즈의 모습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 레너드 번스타인

 

 

 

락음악의 역사는 미국과 유럽의 계급사회에서 출발한다.

당시 인종차별을 받던 흑인들이 블루스에 반항정신을 담아내어 빠르고 격렬한 댄스음악을 만들어내었고

이를 흑인들 근처에서 같이 일을 하던 하층계급의 노동자들이 수용하면서 유행이 되기 시작한다.

 

로커빌리라고 불리던 이 음악은 세계 2차대전 이후인 50년대 중반, 이름을 로큰롤이라고 바꾸고 유행이 가속화되기 시작하고

엘비스 프레슬리라는 걸출한 스타의 등장으로 상업적인 정점을 찍게 된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50년대 후반 락스타인 제리 리 루이스가 미성년자 사촌과 결혼한 사실이 알려지고, 

척베리는 미성년자와 함께 주 경계선을 넘다가 체포되었다. 이에 엘비스 프레슬리도 여론을 피하기 위해 군입대를 한다.

이러한 사건들과 함께 그동안 반항심리에 불만을 갖고 있던 기성세대들에 의해 락음악은 역사 속으로 사라져 가는듯했다.

 


그렇게 미국에서는 푸대접을 받던 락음악이 영국에서 뒤늦게 열풍이 불기 시작하며

대중음악 역사상 최고의 밴드인 비틀즈가 1959년에 등장하였고, 그 외에도 롤링스톤즈, 더 킹크스, 더 후와 같은 걸출한 밴드들이 등장한다.

특히 비틀즈는 엄청난 인기를 구가하여 락음악을 부활시켰고, 영국에서의 성공은 물론 미국진출까지 성공한다.

 

 

비틀즈의 첫 미국진출을 담은 비디오

이를 브리티시 인베이전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이에 영향과 자극을 받아 영국과 미국에서 락뮤지션들이 나타나기 시작하였고,

인기가 영국과 미국에서 끝나지 않고 전세계로 퍼져나가 락음악이 세계에 자리잡기 시작한다.

 

또 당시 포크장르에서 대성공을 거두었던 밥 딜러은 포크의 한계를 인정하고 회의에 빠져있다가 비틀즈의 음악을 듣게 되었는데

락음악 특유의 자유로움과 에너지에 매료되어 포크 락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하게 된다.

 


특히 1967년에 발매된 Rubber Soul은 싱글 위주로 판매되었던 대중음악의 관례를 뒤집어 싱글 판매를 전혀 하지 않고 정규앨범만을

판매하였는데, 앨범이 특유의 통일성을 갖고 있어 앨범 자체가 하나의 감상단위가 될 수 있음을 알려주었다는 점에서 기념비적인 앨범이라고 할 수 있다.

 


바로 그 다음 앨범인 Revolver는 사이키델릭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하며, 동시에 사회비판적인 요소들을 담아내었다.

특히 이 때 개척된 사이키델릭이라는 장르는 더 도어즈, 지미헨드릭스, 핑크플로이드에게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또 앨범에는 실리지 않았지만, 

당시 빌보드 1위를 기록한 Paperback Writer의 비디오는 (퀸의 보헤미안 랩소디와 함께) 최초의 뮤직비디오라고 불린다.

 

 


그 다음 앨범인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는 폴 매카트니의 지휘 하에 만들어졌다.

이 앨범은 락음악 역사상 가장 중요한 앨범이라고 평가받으며, 실제로 롤링스톤지 역대 최고의 명반 1위를 달성하기도 했다.

 

글의 서두에 언급한 번스타인이 '비틀즈는 슈만의 음악에 견줄 수 있다'고 발언한 것이, 바로 이 앨범을 듣고나서 한 말.

 

오락적이고 대중적으로 치부되었던 락음악을 예술로써 끌어올린 첫번째 앨범이라고 평가받으며, 기성세대들이 락음악을 인정하는

계기가 된 앨범이기도 하다.

 

 

또 다른 후기 앨범 The BEATLES는 앨범명과 앨범커버가 그려지지 않은채로 발매되어 화이트 앨범이라고 불린다.

(이는 메탈리카와 같은 밴드들에게 오마주된다.)

이 앨범은 앞서 언급한 페퍼상사앨범의 꽉찬 느낌과 대조되고 미니멀리즘한 디자인으로 발매되었으며

그와 동시에 더블앨범의 형태로 발매되었다.

 

이 앨범에서는 멤버들 전체가 개성을 자유롭게 표현해 내어 통일성이 없어졌는데, 이는 앞서 언급한 루버 소울 앨범이 갖고 있던 요소와 대비된다.

즉, 비틀즈 자신들이 정립해놓은 개념을 자신들이 또 다시 뒤엎어 버린 것.

 

그리고 그만큼 여러가지 음악들이 섞여 '이전까지 존재하던 모든 서양음악들을 집대성함과 동시에 앞으로 새로 탄생할 장르를 예견해 주었다'라는 평가를 받는다.

 

 

수록 곡 Helter Skelter는 사람들이 락음악하면 떠올리는 시끄러운 이미지의 장르인 헤비메탈의 시초를 열었다고 평가받는다.

 


수많은 패러디를 양산한 Abbey Road의 표지

 

페퍼상사 앨범의 폴 매카트니의 입김이 많이 들어갔다는 이유와 여러가지 이유들이 합쳐져 비틀즈 멤버들간의 불화가 심화되기 시작한다.

그러다 1969년 멤버들은 해체를 결심하고, 마지막으로 의기투합해서 만들고자 한 것이 바로 이 앨범이다.

(실제 발매는 Let It Be가 마지막이지만, 녹음은 Abbey Road가 마지막에 진행되었다) 

 


앨범 표지 촬영 현장에서의 존 레논과 폴 매카트니

 

이 둘의 관계는 대중음악 역사상 최고의 파트너십을 자랑하며, 비틀즈 명곡들은 대부분 이 둘이 작사/작곡하였다.

또 이둘은 누가 곡을 쓰던지 상관없이 레논 - 매카트니라는 이름을 내걸기로 약속하였는데,

끈끈한 파트너십을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나중에 가서 누가 무슨 곡을 작곡했는지에 대해 논란을 불러 일으키기도 하였다.

 

 

레논-매카트니의 대표적인 합작곡

 

레논이 사운드를 구상하고 매카트니가 멜로디를 덧붙여 내어 완성한 곡이다.

 

레논은 이 노래 마지막 부분에 굉장히 높은 음을 넣어 사람은 듣지 못하고, 개가 들을 수 있는 음을 넣었는데

그 이유가 '이 음을 들을 수 있는 사람은 개와 동급인 사람일 거야'라는 농담에서 출발하였다고 한다.

 

레논과 매카트니의 파트너십도 이런 레논의 농담에 큰 관련이 있는데,

레논은 이렇듯 장난스러운 면모를 예술에 녹여내어 실험적인 노래들을 많이 써냈고

반대로 매카트니는 대중적인 노래들을 많이 써냈기 때문에

서로가 서로의 것을 보안해주고, 극대화 시켜주어 둘의 파트너십이 더욱 잘 맞아떨어졌던 것이다.

 


이외의 두 멤버인 조지 해리슨과 링고 스타도 비틀즈의 업적에 큰 역할을 해주었다.

 

특히 조지 해리슨은 후기 비틀즈의 명곡인 Here Comes The Sun, While My Guitar gently weep, Something등의 후기 비틀즈

명곡등을 작곡 하였다.

 

서정적인 멜로디가 인상적인 Here Comes The Sun

 

드러머인 링고 스타는 많은 곡을 작곡하지는 않았지만, 목소리가 가장 따뜻한 편이라, Yellow Submarine과 같은 노래의 보컬을 맡고

Octopus's Garden을 작곡하고 보컬을 맡기도 하였다.

 

특히 멤버들간의 불화를 막고, 서로를 화해하게 하여 비틀즈의 활동을 10년이나 지속하게 한 장본인이다.

 

비틀즈의 대부분의 음반을 프로듀싱한 조지마틴에 의하면 1집을 내고 해체할 뻔한 비틀즈가 링고 스타 덕분에 유지되었다고 한다.

 

게다가 드럼실력의 기본기가 매우 탄탄하여, 어떤 곡이든 드럼을 알맞게 쳐냈고 특히 strawberry fields forever와 같은 노래에서는 링고스타의 드럼실력이 여김없이 발휘된다.

 

 


비틀즈의 해체이후 멤버들은 개인활동을 이어간다. 특히 조지 해리슨은 재능을 만개하여 멤버들 중 최초로 빌보드 1위를 기록하기도 한다.

존 레논은 그 유명한 'Imagine'을 발매하고, 폴 매카트니와 링고스타도 좋은 활동을 이어나간다.

 

하지만 1980년 존 레논은 마크 채프먼이라는 정신이상자에게 총격을 당하여 사망한다.

이후 존 레논을 제외한 3명의 멤버들은 한데 모여, 존 레논의 아내인 오노요코에게 존 레논의 미완성 작업물들을 줄 수 없냐고 부탁한다. 오노 

요코는 흔쾌히 수락하고, 3명의 멤버들은 미완성 작업물을 끝까지 완성시킨다.

 

 

그 중 하나가 비틀즈의 또 다른 명곡이라고 불리는 Free As A Bird

 


중년이 되서 모인 3명의 멤버들..

 

이후 2001에 조지 해리슨도 폐암으로 사망하였다.

 

마틴 스콜세지의 다큐멘터리 <조지 해리슨:물질 세계에서의 삶>에 출연한 링고 스타가 조지 해리슨을 회상하며 눈물흘린다.

 

 

조지 해리슨의 추모 공연으로, 절친이자 세계적인 기타리스트인 에릭 클랩튼과 비틀즈의 링고스타, 폴 매카트니

그리고 아들이 출연하였다.

연주하는 노래는 조지 해리슨의 대표적인 명곡 While My Guitar Gently Weep

 

현재 폴 매카트니와 링고 스타는 아직도 활동중이며

간간히 라이브에 같이 나와 노래를 부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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